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가령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갖게 해 주세요', '만화 속의 주인공이 눈앞에 나타나게 해 주세요' 따위의 깜찍한 것들로 시작해서, '얼른 멋진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나 '우리 가족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같은 총명한 것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것은 마음을 모아 기도했고, 끝내 어른이 되어 그 소원을 이룬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1. 기도(祈禱)하다
: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빌다.
오락실에는 오늘도 게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작은 체구와 모범생의 상징인 네모난 안경을 쓰고도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을 풍기는 꼬마는 오락실 게임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지 자그만 버튼을 두드리는 족족 상대에게 타격을 주었고, 승부는 싱거우리만치 빠르게 끝나버렸다. 결국 반대쪽에 앉아있던 어린이가 씩씩대며 의자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야! 너 반칙이야!"
반칙이라 할 만한 것이라고는 반대편 의자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의자를 선점했다는 것뿐이었지만, 승리를 거머쥔 아이는 이유를 물었다. 묻지 않고 조용히 빠져나가려다 나이도 많고 아주 무서운 학생에게 몇 대 맞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쉽게 얕보이는 것은 왜소한 체구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내가 반칙이라고? 왜?"
"반칙이야!"
제대로 된 근거도 대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반칙이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꼬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애들을 상대로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래도 몇 마디 위로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는 입을 열었다.
"너도 잘하는 편이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마."
"놀리지 마!"
순수한 의도가 담긴 말을 오해했는지 더욱 분노한 어린이는 발을 쾅쾅 구르며 다른 게임기로 자리를 옮겼다. 화 때문에 뭉개진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고 봐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것을 보아 통쾌한 복수극을 꿈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아이는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다녀왔슴다–."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민첩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소년은 집이 비었음을 알자마자 비디오 게임기 앞으로 달려갔다. 숙제쯤이야 조금 늦게 해도 상관없었다. 빨갛고 하얀 공을 던지자 초록색 생명체가 반짝이는 빛을 내며 사라졌다. 모자를 뒤로 돌려 쓴 주인공이 발랄하게 외쳤다. 넌 내 거야!
아이는 게임 속의 세상을, 그 안에서 멋진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동경했다. 소년은 게임 속 주인공처럼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멋진 친구를 사귀고, 악당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
빛나는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친구의 함께 놀자는 힘찬 부름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집에서 나뒹구는 붉은 천을 어깨에 두르고 세숫대야를 투구 삼아 머리에 쓰고 나면, 꼭 멋진 용사가 되어 세상을 활보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천과 세숫대야가 아이의 장난감으로 활용되었기에 집안에 남을 수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은 꽤나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모든 걸 보고, 듣고 느끼렴.』
만화 영화 속 악당을 물리친 용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에게 한 그 말.
『그러면 어느 순간 훌륭한 용사가 되어 있을 테니.』
그날 밤, 소년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기도(祈禱)했다. 꼭 게임 속의 멋진 주인공처럼 끝내주는 모험을 하게 해달라고.
2. 기도(企圖)하다
: 어떤 일을 이루도록 꾀하다.
『얘야, 네 앞날의 모든 순간은 멋진 모험일 거란다.』
어른들은 꿈은 이뤄지지 않기에 꿈이라고 불리는 것이라지만, 그 소중한 상상의 나래로 가득했던 유년기를 추억으로만 남겨놓지 않는 이들에겐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다. 단순히 찰나의 꿈으로만 여기고 추억이란 이름의 먼지 쌓인 구석에 남겨놓은 자들의 기억에서는 계속해서 아련한 후회의 빛을 내고, 그것을 실현한 이들에게는 인생의 수많은 트로피 중 하나처럼 당당히 존재하는 것. 어느새 자라 버린 아이는 생각했다. 환상, 꿈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어느새 시간은 아이를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흘러 있었다. 그리고 용사를 꿈꾸던 꼬마의 앞에는 모험이 가득했다. 비록 꿈의 주인조차 그 꿈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희뿌연 구름이 파란 환상을 뒤덮었을지라도.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꿈에는 이미 먼지가 켜켜이 쌓이고 물감이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반짝이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공간을 바라보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란한 것들이 가득했었던 것 같건만, 어느새 텅 비어있었다.
「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는 위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른이 된 이들은 한때 순수하게 꿈을 꿨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의 어린 마음은 홀로 속삭였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아직 어렸던 우리를 밖으로 내몰았기 때문 아닐까? 우리의 마음속엔 여전히, 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어린아이가 있을걸.
그는 불꽃이 다 타오르고 남은 회색 잿더미처럼 생기 없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개미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은 흐릿해진 자아와 힘없는 몸뚱이, 그리고 생각을 하지 않는 머리마저 한 무리의 좀비를 닮아 있었다.
그는 언젠가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의 상태를 존재한다고 명명할 수 있을까?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은 회의감이었다. 우리는 정말 이대로 살아야 할까? 마음속의 꼬마아이가 우는 것을 내버려 두고,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유용한 사람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끝없는 의문과 의심은 곧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이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방황하던 소년은 남들과는 다른 길에 발을 얹는 데 성공했다. 타인들이 원하는 드넓은 대로와는 다른 비좁은 골목길에 몸을 들인 그는 온갖 고물들이 쌓인 뒷길을 배회했다. 한때 그가 바랐던 길임이 분명했지만 동시에 두려우리만치 어색했다.
소년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어느 조잡한 낙서 앞이었다. 옆에 버려진 폭죽 더미가 있는 것을 보니 장난을 치려다 발각당했거나 주변의 사물을 영감으로 삼는 예술가인 모양이었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그리다가 도망간 듯 색감부터 선까지 모두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것은, 그 골목 내 최고의 미술 작품이었다. 묘한 감응을 느낀 소년은 홀린 듯 먼지 묻은 폭죽을 집어 들고 그림 위에 손을 얹었다.
『모든 걸 보고, 듣고 느끼렴.』
그러자 기억이 다시금 소년에게 속삭였다.
『그러면 어느 순간 훌륭한 용사가 되어 있을 테니.』
소년은 하늘을 향해 전설 속의 성검보다도 훨씬 단단한 검을 드높이 들었다.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르는 그것의 이름은 꿈이었다.
그리고, 이젠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이 찬란히 떠오른 태양을 보며 기도(企圖)했다. 이젠 어린 시절의 동심을 이룰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