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SOPIA the Spy

Avrora 2024. 4. 28. 15:25

* 약간의 유혈 묘사와 욕설 포함
* Ssipssang guys - Sharks 작은 소리로, 반복 재생을 권합니다.


 스파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습니다?"

 뒤에서 저 새끼 잡아 소리가 들려왔다.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몇 번의 총탄 세례. 조직에서 큰 일이라고 했을 때 눈치를 채고 발을 뺐어야 했는데. 뭐, 다들 알다시피 이 바닥에서 산 채로 발을 빼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지만 말입니다.

 탕!

 차가운 총성이 가까운 곳에서 들린다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다리가 도주하고자 하는 주인의 의사를 배반하고 무너진 뒤였다. 수십 정의 총부리가 그의 눈앞, 뒤통수, 그리고 정수리에 겨눠졌다. 어느 조직이든 만국 공통어처럼 가지고 있는, 움직이면 죽는다는 협박이었다.

 "확실히 조졌군요."

 그나마 총을 맞은 곳이 머리가 아니라 다리라서 다행이다. 더럽게 아프다는 사실만 외면하면 그럭저럭 괜찮았으니까.

 복면 아래의 이마에서 흐른 땀에 시야가 가려지자, 그는 선글라스 아래로 손을 넣어 눈가를 대충 닦아내고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이것 또한 일종의 만국 공통어였다. 대체적으로 항복을 뜻하는.

 "예, 뭐. 잡아가십쇼. 아는 거 다 불겠습니다."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진심인지 분간하고자 하는 토론일 것이다.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믿어보십쇼. 밑져야 본전이잖습니까? 제가 미쳤다고 여기서 날뛸 것도 아니고, 전 제 목숨이 가장 소중하단 말입니다!"

 애초에 조직을 향한 충성심 따위 없었던 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훨씬 좋은 조건의 타 조직으로 옮길 의사가 충만했다. 지금은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라 살려만 준다면 오케이일 것 같지만.

 무릎을 꿇은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남자가 작은 칼을 들고 있던 남자에게 눈짓을 했다. 이어서 가볍고 빠른 구둣발 소리가 들렸고, 뒤에서는 그의 양손을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생명 연장의 신호였다.


 그는 여기까지 온 이유와 과정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모종의 사유로 약점을 잡혀 몸을 담게 된 마피아 조직은, 선량한 시민이었던 그를 도둑으로 활용했다. 정보 전문 도둑. 보통 스파이라고 통칭되는 그것 말이다.

 검은 복면과 빨간색 하트 모양 파티 선글라스라는, 몹시 눈에 띄는 외형 덕분에 잠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었던 그가 선호하는 방식은 당당하게 환풍구로 들어가 떳떳하게 정보를 빌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직에서 그가 가져올 정보는, 별것 아니었다. 한 달에 두어 번 꼴로 타 조직들을 궤멸시켜가며 무섭게 자라나는 신생 조직을 경계했던 보스가 그에게 직접 명령을 내렸다. 조직의 보스는 누구고, 무기는 어느 정도 수준이고….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절반도 안 되었지만, 뭔가 요구사항이 많긴 했다.
 아무튼 서류가 한가득 쌓인 방 안에서 그 많은 정보들을 몰래 빌려가던 와중, 운 나쁘게도 누군가에게 발각당한 것이다. 한여름에도 두툼한 복면과 하트 파티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미친놈을 조직 내에서 본 기억이 없을 것임이 분명한 말단 조직원은,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추격전이 그로 인해 생긴 소소한 소동이었고, 뒤통수에 총구가 겨눠진 채 어두컴컴한 복도를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지금이 그 과정 중 하나였다. 아마 결과는… 죽거나, 조직을 갈아치워 살아남는 것이 되리라.

 그때, 딱딱한 총구가 뒤통수를 강하게 눌렀다.

 "이 새끼가, 빨리빨리 걸어!"
 "아니, 당신들이 쏴 놓고선 기억도 못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이 다리를 좀 보십쇼! 이 상태로 어떻게 빨리 걷습니까?"

 간 크게도 항의의 말들을 늘어놓은 스파이는 보란 듯이 제 다리를 들어 보였다. 너덜거리는 검은 바지의 천이 총을 맞은 위치와 질질 흐르는 피를 드러냈다. 그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드문드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저게 다 제 피란 말입니다!"
 "됐고, 빨리 걸어."

 이마에 총을 가져다 대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누그러진 태도였다. 보기보다 상냥하시군요? 용케 그 말만큼은 참아낸 그는 얌전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법 가까워진, 복도 끝의 커다란 문을 향해.

 보스의 방이 분명한 양문형의 짙은 나무 문이 달린 공간까지 십여 미터 정도 남았을까. 줄곧 뒤에서 여유롭게 걷고 있던 남자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질 못하며 앞으로 나섰다. 한 번의 큰 심호흡과 함께, 그는 문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 외부인을 데려왔습니다."

 문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리고, 나름 중간 관리직 정도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한껏 숙이며 문을 열었다. 조직원들이 복도보다 어두우면 어둡지 결코 더 밝다고는 못할 방 안에 스파이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작게 새어 들어오는 금속이 부딪치고 마찰하는 소리.
 그는 갇혔다.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눈이 어둠에 적응해 주변을 둘러볼 때까지의 틈을 주지 않고, 음성 변조를 의심하게 만드는 낮은 목소리가 스파이에게 질문을 건넸다. 보스인가? 질문을 한 자가 누구든 간에 사실을 말해야 죽지 않는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조직에 있더군요? 살고 싶어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나저나, 좀 앉아도 됩니까? 다리에 총을 맞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가 대답은 듣지도 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먼지 투성이 카펫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슬슬 몸이 차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판에 뭣이 중요하랴.
 그는 양다리를 쭉 펴고 앉은 채 말했다.

 "뭐, 전 제 목숨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서. 조직에 관한 정보를 모조리 말하라면 그럴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물론 살려주신다면 말입니다."

 슬슬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두 남자의 실루엣을 확인했다. 둘 다 키가 꽤 큰 편이었다. 그런데, 하나는 아주 많이 크다. 2미터를 훌쩍 넘길 것이 확실한 그 인영을 보던 스파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몰래 빠져나가는 것은 포기해야겠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시도는 해보려고 했었는데.

 "그나저나, 너무 어두운데 불 좀 켜 주시면 안 됩니까?"
 "하, 귀여운 친구로군."

 커다란 형체가 비교적 작은 남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작은 남자가 어디론가 움직이며 깊은 한숨을 쉬더니, 방 안에 희미한 조명이 생겼다.

 그리고 스파이는 어두컴컴한 구석의 의자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각 잡힌 정장 바지와 구두를 발견했다. 저 자가 보스다. 확신을 얻자마자 시야를 돌렸다. 보스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반, 그의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기 위함이 나머지 반이었다.

 "음–, 반갑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현재 반갑기는 힘든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자각은 없으십니까?"

 바로 쏘아붙이듯 날아오는 날카로운 말. 스파이는 잠시 그 말을 한 중년 남성에게 시선을 뒀다가, 그 옆에 있는 거한과 눈을 마주쳤다.

 "그쪽은 인사 받아주실 겁니까?"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한쪽 눈썹을 까딱, 추켜올렸다. 어딘가 장난스럽고, 또 살벌하기도 한 인상이었다. 유쾌하게 슬쩍 올라간 입꼬리만 아니었다면 너는 지금 입을 너무 많이 놀리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글쎄, 인사를 하려면 상대가 누군지를 알아야지. 자네는 이름이 뭔가?"

 이름? 유감스럽게도 잊은 지 오래였다.
 스파이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전 소피압니다."

 "10초 만에 지으신 이름 같은데요."
 "이런, 어떻게 아셨습니까?"
 "스파이 이름이 소피아…, 큭, 으하하!"


 커다란 남자가 웃어 젖혔다.

 "아이, 웃지 마십쇼! 사람 이름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소피아의 열변에 남자는 더 크게 웃었다.

 "흐하하학! 난 이 친구 마음에 드는데? 보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자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마치 이 상황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극인 것처럼.

 그림자 속 보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비단 표정뿐만이 아니었다. 성별은 무엇인지,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소피아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두 남자가 보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안락의자의 뒤에 선 둘은 소피아를 응시했다. 두 쌍의 푸른 눈이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빛을 냈다. 느와르 영화의 뻔한 포스터를 닮은 광경이었다.

 "가치를 봐야지."

 들려온 것은 노인의 목소리였다.

 "재미가 아니라."
 "역시,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아무리 봐도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근데, 살아서 여기까지 들어온 것만 봐도 가치는 이미 증명한 것 아닙니까?"

 싹을 자르겠다 들어왔다가 죽은 것만 몇인데. 누가 봐도 무력을 담당한다고 판단할 법한 외모의 남자가 그르렁거리며 낮게 속삭였다.

 "그건 그 인간들이 말을 잘못한 까닭이지요."

 그런데, 이 얘기들을 굳이 날 앞에 두고 해야 합니까? 소피아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코앞에서 말을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판국에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는 그만큼의 철면피는 아니었다.

 "단답이, 넌 어떻게 생각혀?"

 보스가 미묘하게 몸을 돌리고 물었다. 단답? 상황을 보아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한 질문은 아니었다.
 누가 또 있나?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사람은 없었다. 없었다고 생각했다. 등 뒤, 정확히는 잠긴 문 옆에서 짤막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괜찮."
 "요 녀석두 쓸만혀?"
 "예."

 유독 말이 짧은 남자가 소피아를 지나쳐 보스의 앞에 섰다. 보스의 뒤에 선 커다란 두 사내 탓에, 객관적으로 봐도 조그마한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어깨에 스칠 듯 말 듯한 기장의 단발머리를 한 남자는 보스에게 밝은 노트북 화면을 내밀었다. 생김새가 익숙한 것을 보아 최신 기종인지, 꽤나 얄쌍한 그것을 손에 든 보스가 끌끌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전적이 아주 기냥 화려하구만?"

 …설마 그 짧은 새에 정보를 모은 건가? 어떻게?

 "하필이면 가장 독한 조직에 계시는군요."
 "제가 그랬습니까?"

 소피아가 어리둥절하게 묻자 네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한 마디씩 말을 얹었다.

 "사기."
 "녀석, 사기당했구만."
 "속으셨군요."
 "으응, 당했네."

 
 약간의 적대감을 품고 있던 목소리들이 순식간에 동정심 반, 놀림 반으로 변했다.

 "뭐, 뭡니까? 왜요?"
 "잘 살던 사람의 약점을 잡아서 조직으로 끌어들여놓고는 도구로 써먹는 것. 당신이 들어간 조직의 전통적인 수법입니다. 그렇게 단물을 끝까지 뽑아내다가, 꼬리가 길어졌다 싶을 때 즉시 버리는 겁니다."

 
 검은 목티에 마찬가지로 어두운 정장 재킷을 걸친 남자가 말했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문장은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살벌하게 대비되었다.
 
 "운 좋게 조직의 손바닥 위에서 탈출한 이가 있다면, 몇 달이 걸리든 반드시 찾아냅니다. 그리고, 흔적을 말소하지요."
 "제가 곧 죽을 거란 말을 참 차분하게 하시는군요?"
 
 커다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차피 곧 죽는 거 지금 죽이겠다는 뜻인가. 위협적이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을 보며 소피아가 생각했다. 하지만 사내가 보인 행동은 생명을 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피아의 어깨에 쓰레기통 뚜껑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크기의 손을 얹은 그 남자는 소피아를 보며 씩 웃었다.
 
 "걱정 말게. 그 조직, 일주일만 지나면 사라질 예정이거든."
 "그건 또 뭔 소립니까?"
 
 오늘따라 유독 자주 발생하는 소피아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은 보스였다.
 
 "그놈들이 우리 다음 타깃이여."


 그들은 생각보다 정의로운 집단이었다. 정의로운 마피아라니, 이 무슨 궤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금지 약물이나 무기 밀매 따위를 주 수입으로 삼는 타 조직들과는 달리, 이들의 세력 기반은 꽤나 평범하고 비교적 합법에 속하는 사업의 비중이 높았다. 비록 마피아가 조직된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이거? 그냥 취미인데?"

 이 조직의 분위기.

 "아무리 취미라지만 당신은 너무 얼굴을 안 비추잖습니까…."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융터르가 캘리칼리를 책망했다. 그간 봐온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사람들의 옆에 있던 단답벌레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실종."
 "어이…, 자네까지 나한테 이러기인가?"

 보스 이덕수의 말을 빌리자면, 씨잘데기 없이 군기 잡는 조직에 반쯤은 인질로 붙잡혀 있었던 소피아에게 이런 자유분방함의 극치를 달리는 분위기는 몹시 어색했다. 분명 아래 부하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그들을 불편히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건만, 이 윗대가리들은 매일같이 평화롭게 서로를 헐뜯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소피아가 소속되어 있던 대형 조직을 없애러 가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평소 애용하던 망치와 소위 빠루라 불리는 공구를 한 손에 든 소피아는 그 점에 대해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있으면 옛 조직의 본진에 전쟁을 선포할 생각이니, 질문을 할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말단들은 여기가 평범한 마피아인 줄 알고 있을 겁니다. 한정된 정보만을 내어줬으니까요."
 "꼬리."
 "그래, 우리 단답이가 말한 대로 꼬리 역할이지."
 "꼬리 자르기 말입니까?"

 이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들키면 망하는 짓거리는 오래 못 가게 되어 있으니깐은, 사람 몇 죽이고 도망치듯이 여기 들어온 말단들한테 그걸 맡기는 거여. 관리직 떠넘겨 놓으면 신나서 열심히 혀. 지가 출세한 줄 알고."

 "이야, 그것 참…."
 "쓸데없는 말은 그만 허고."

 준비는 됐냐? 무전기를 손에 쥔 이덕수가 묻자, 나머지 네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꽉 쥐었다. 캘리칼리가 가장 앞섰고, 소피아가 그 뒤를 이었다. 융터르와 단답벌레가 조직의 본진으로 통하는 철문의 양 옆에서 대기했다.

 
 "그려, 시원하게 부수고 와."

 그 말을 끝으로, 보스는 네 사람의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캘리칼리가 문을 강하게 걷어찼다. 두툼한 금속 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없이 밀린 그것 너머로, 전 직장 동료들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몇몇 보였다.

 "제 기억보다 좀 많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모인 것 같습니다."
 "영 좋지 않군요."

 [단답이랑 융터르는 계단에 있는 것들부터 치우고, 나머지 두 놈은 1층 우선으로 청소해.]
 "좋아, 바로 정리해 드리지!"

 종잇장처럼 접힌 문을 방패 삼아 서 있던 융터르와 단답벌레가 총을 장전했다.

 "그런데 융터르, 총은 잘 쏩니까?"
 "아뇨."

 "저 같은 지성인은 무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닙니다."

 단답벌레가 대꾸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있던 조직원 하나를 저격했다. 묵직한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지며 조직원 서넛이 함께 쓰러졌다. 융터르가 그에 반박하며 멀찍이서 엎어진 조직원들의 사지에 총알을 하나씩 박아 넣었다.

 "소피아 님, 다리에 문제 생기면 안 되니 너무 무리하진 마시지요."

 
 융터르의 말에 소피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무리하기도 전에 저 인간이 다 쓸어버릴 것 같습니다."
 "어이, 구경만 하지 말고 나 좀 도와주지 그래?"
 
 덩치 큰 조직원 셋을 혼자서 상대하던 캘리칼리가 외쳤다. 도움을 요청하는 말과는 상반되게, 캘리칼리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그가 웬만한 성인 남성의 다리 길이와 맞먹는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적어도 한 사람은 반드시 쓰러지고 있었다.
 둔기의 머리가 허공을 지날 때마다 상쾌한 파공성(破空聲)이 들려왔고, 그에 질세라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금속 컨테이너로 가득한 폐공장을 울렸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도륙과도 같은 모양새.
 
 소피아가 캘리칼리의 뒤를 노리던 조직원의 뒤통수에 손망치를 힘껏 던졌다. 놈은 전원을 강제로 종료한 컴퓨터처럼 순식간에 몸이 굳어 쓰러졌다.
 
 "세상에, 치사하게 그게 뭡니까?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지!"
 
 다리의 총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느긋하게 걸어가던 그에게 조직원 하나가 달려들었다. 소피아는 아랑곳 않고 망치를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에겐 저 무식하게 힘만 센 공격이 자신에게 닿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의 앞에는 신생 조직의 행동대장이 있었으므로.
 
 콰득! 캘리칼리는 주먹을 사용했다. 기다란 무기를 휘두르기엔 애매한 거리였던 까닭이었다. 커헉, 소리를 내며 조직원이 나가떨어지자,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놈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어느새 융터르와 함께 2층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 단답벌레였다. 스코프에 눈을 맞추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만사를 귀찮게 여기는 듯한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쯤 되자 싸울 의지를 갖춘 조직원들은 사기를 잃거나 목숨을 잃은 지 오래였다. 말단으로 추정되는 하나가 먼저 칼을 떨구듯 내려놓자 조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았다. 캘리칼리가 가장 먼저 항쟁을 포기한 자에게 물었다.
 
 "보스는 어디 있나?"
 "말하면, 살려주시는 거죠?"
 
 캘리칼리는 그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착각의 동물이라 하던가. 그 침묵에 제 공상을 담은 조직원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3층, 보스는 3층에 있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부질없는 감정으로 부풀어 오른 그 얼굴에 망설임 없이 총알을 꽂아 넣은 것은 융터르였다.
 
 "이봐!"
 "저희 탓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습니다."
 
 융터르의 눈이 겁에 질린 조직원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은 조직원들을 향한 미약한 멸시가 깔려 있는 것 같다가도, 일종의 회의감을 담고 있었다.
 
 "이왕이면 아프지 않게 죽는 것이 낫겠지요."
 
 차가운 폐공장에 검은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를 환기한 것은 이덕수의 무전이었다.
 
 [욘석들아, 정신 안 차려? 보스 위치 파악했으면 잡으러 가야지, 뭣들 하는 거여?]
 "보스께서도 원하시니, 제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토론은 나중으로 미루고 할 일부터 합시다. 이 틈을 타서 낡은 조직의 썩어가는 머리들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저거 놔두면 또 지들끼리 싸우겄네. 좀만 기다려, 금방 가니까는.]
 
 모두의 무전기에서 거북하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만 큰 새끼들. 한 목소리의 잔잔한 욕설이 네 번씩 메아리처럼 울렸다. 단답벌레가 무전기를 끄자, 소피아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도 동시에 무전을 종료했다.


 1층과 2층에 모든 병력을 집결했던 것인지, 3층으로 가는 길은 고요했다. 3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꽁꽁 감춰두었으니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단답벌레의 앞에서 근거 따위 없는 오만이 되었다.
 
 "이게 원래 이렇게 쉽게 뚫리는 게 아닌데."
 
 소피아의 중얼거림에 캘리칼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는 듯한 과장된 몸짓을 했다.
 
 "우리 단답이가 워낙 유능해야 말이지. 오죽하면 다른 조직에서–"
 "조용."
 
 캘리칼리의 말을 칼같이 자른 단답벌레가 통로의 문을 열었다. 거 참, 매몰차구만. 캘리칼리가 투덜거렸다.

 단답벌레가 연 문 너머에는 어둡고 비좁은 계단이 있었다. 소피아가 기억을 더듬었다. 딱 한 번, 보스의 명령을 듣기 위해 지났던 이 길에 대한 기억을.
 칠흑 같이 어두운 복도와 가파른 계단. 위태로운 통로를 지나면 보이는 새까만 문. …숨 막히도록 어두운 색채의 방, 그 안의 앉으면 푹 꺼지는 가죽 의자와, 그리고 보스.
 
 "제 기억상 이쪽부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니는 비밀 통로 보안 수준을 아는 건 그렇다 쳐도, 저 앞에 아무것도 없는 건 어떻게 아는 겨?"
 
 날카롭게 다듬어진 이덕수의 질문에 소피아는 살짝 삐딱하게 선 채 허리 부근에서 하늘로 향한 손바닥을 쫙 펼쳤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야 지나간 적이 있으니까요?"

 "말단 스파이가 보스 방까지 들어갈 일이 뭐 있다고?"
 "아, 제가 말 안 했습니까? 여러분 진영에 쳐들어간 것, 보스가 직접 명령한 겁니다. 얼굴 마주 보고."
 
 소피아를 제외한 네 사람이 잠시 서로를 흘겨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조직 내 입지가 견고하셨는데요?"
 "그냥 말단이라는 소리 듣기엔 억울한 위치긴 했습니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애용하는 무기였구만."

 단답벌레가 짧은 한숨 소리를 냈다.
 
 "뭐야, 단답벌레. 웬 한숨입니까?"
 "어쩐지 조사할 때 계속 뭐가 나오더라니, 일찍 말 안 하고 뭐 했냐?"
 
 융터르가 불쑥 말했다.
 
 "… 라시는군요."
 "융터르, 자네 이제 독심술도 하나?"
 "그랬으면 제가 진즉에 떼돈 벌고 한량처럼 놀았지, 여기서 이러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좁은 계단을 오르자, 그들의 앞엔 어느새 새카만 문이 있었다.
 
 "이거 참, 침입자들에게 불리한 구조로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람들이 배려심이 없어."
 "당신들은 침입자한테도 배려를 해줍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소피아 님의 생존이 그 대표적인 예시지요."
 
 아아. 소피아가 이해했다는 듯 영탄을 흘렸다.
 
 "뭐, 그러면, 자네 옛 상사 얼굴이나 볼까?"
 
 캘리칼리가 능글맞게 웃으며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려오는 승낙의 말 따위가 나오지도 않았건만, 그는 제 일행들이 문 경첩의 안부를 걱정할 정도로 강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은 호화로웠다. 얼핏 봐도 수백을 호가할 것임이 분명한 가죽 소파와 흑단목 책상. 그리고 금박칠을 해 경박스럽게 번쩍이는 조각상 몇 개. 폐공장 1층과 조직원들의 꾀죄죄한 몰골을 생각했을 때, 보스의 기나긴 죄목에 횡령을 추가할 수 있을 듯했다.

 
 "야, 이, 이 새끼들아!"

보스는 그들을 보자마자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아, 그래
. 나도 만나서 반갑네."
 "너희들이 뭔데 여기까지 기어들어와!"
 "우리가 실은 경찰이거든. 네놈들 잡겠다고 고생을 좀 했지."
 "서, 설마…"
 "거짓말이다, 이 녀석아!"
 
 캘리칼리가 무기를 휘둘러 보스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공격에도 점수가 있다면 만점을 주고 싶은 궤도. 볼썽사나운 소리를 내며 나자빠진 보스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앞에는 그가 스파이로 유용하게 써먹던 도둑이 있었다.
 
 "너, 너!"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이젠 가 아니라 소피압니다."
 "이 사지를 갈아서 아가리에 처넣어도 시원찮을 새끼가! 감히 은혜를 이따위 원수로 갚아? 내가 너 같은 잡범 도둑놈 인생…!"
 
 그 순간,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겼다. 보스의 머리에서 핏줄기가 솟구친다 싶더니 육중한 몸뚱이가 풀썩 무너졌다. 총을 쥔 이덕수가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나름 뒷세계를 주름잡았던, 기나긴 세대 유지되어 온 대형 마피아 조직의 몰락 치고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결말이었다.
 
 "하여간에 요즘 것들은…."
 
 네 사람이 이덕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태껏 이렇게까지 급진적으로 행동하는 그를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탓이었다.
 
 "뭣들 혀? 곧 경찰 올 텐디 빨리 나가야지."
 
 보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흐릿하게 들리는 바람에 네 사람은 평소답지 않게 보스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누구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말을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후 네 사람 중 가장 제 보스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결여된 융터르가 보스를 곧바로 사살한 이유에 대해 물었으나, 이덕수는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저,
 
 "예나 지금이나 썩어있는 게 꼴 뵈기 싫었어."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대충 가린 거짓임이 분명했으나, 융터르는 그 말에 어떠한 해석 혹은 매끄러운 포장을 가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머지 세 사람에게 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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