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의 밤은 조용했다. 싸움박질하다 독방에 갇힌 사람들의 신음과, 코를 골며 자는 수감자들, 그리고 영 수상쩍은 계략을 꾸미는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카르나르 융터르에겐 어딘가 몽롱하긴 해도 유독 잠에 빠질 기미는 보이질 않는 안온한 밤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커다란 두 형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런, 이거 들켰군요?"
"···당신들 뭡니까?"
"뭐긴 뭐야, 탈옥수지."
뭐 하는 사람들일까. 이걸 교도관에게 알려야 하나? 하지만 죄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교도관들은 보이질 않았다. 혼란에 빠진 융터르는 두 탈옥수를 번갈아 보았다. 검은 복면을 쓴 남자와 평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남자.
"이게 무슨···."
"이왕 들킨 거, 같이 가시겠습니까?"
"예?"
진짜 뭐 하는 사람들일까.
복면 쓴 남자는 커다란 남자에게 물었다.
"괜찮으시죠?"
"뭐, 상관없지."
융터르가 철창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채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자, 복면을 쓴 호리호리한 남자가 말했다.
"얼른 결정하시죠. 저희는 여기서 놀고먹을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시간이 있어도 여기는 밥이 맛이 없잖아."
호리호리한 남자가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봐야 하는 사내를 보더니 순순히 인정했다.
"아, 다른 곳에 비해 좀 별로긴 하더군요."
"지금 탈옥을 하시겠다는 겁니까?"
"방금 말해줬잖냐. 밥이 맛이 없어서 나간다고."
유일하게 철창에 갇힌 상태인 융터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목격자인 그에게 탈옥을 한다며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분위기로 말하고, 하물며 그 이유가 밥이 맛이 없어서라니.
아니, 애초에 탈옥이란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였나? 영화 혹은 소설에서나 극의 긴장감을 한껏 높이며 등장하는 소재인 탈옥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그래서, 같이 간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
이걸 대답을 해야 하나. 하지만 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면 망설임 없이 철창 너머로 그의 머리를 가격해 기억 상실을 유발하고는 마저 탈옥을 거행할 위인들로 보였다.
"···같이 가죠."
기다렸다는 듯이 기다란 철사를 꺼내 드는 복면 쓴 남자를 보며, 카르나르 융터르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걸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구해왔는지 모를 교도소의 지도-신입 교도관에게 제공되는 안내 책자의 페이지를 뜯어온 것으로 보였다.-를 복면을 쓴 남자의 어깨너머로 보며, 융터르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았다. 교도관들의 식사에는 수면제를 타 두었으며 감시 카메라가 가장 적은 길을 미리 조사해 따라다니는 등, 두 사람은 생각보다 계획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밥이 맛없어서 탈옥한 것치고는.
"그런데 저희 어디 가는 겁니까? 출구는 저쪽인데요."
"아, 저희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데리러 가는 겁니다."
그렇게 상냥하고 영혼 없는 목소리로 답한 남자는 어느 철창의 자물쇠 앞에 서서 철사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비밀소녀 님! 저희 왔습니다!"
안에는 주황색 머리가 인상적인, 다른 두 남자에 비하면 한참 작은 체구의 여성이 있었다.
"소피아 님, 역시 와주셨네요-."
"아이, 캘칼 님 구하겠다고 같이 잡혀왔는데 두고 가면 되겠습니까?"
말끝을 길게 늘이는, 외모와는 달리 조금은 예스러운 말투를 가진 비밀소녀는 복면을 쓴 남자, 소피아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융터르를 바라보았다.
"이 분은 누구시죠?"
"오다가 마주쳐서 그냥 데려왔어."
마치 별건 아니고 오다 주웠다, 라고 말하는 듯한 어투였다.
"이 분은··· 어,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군요!"
세 쌍의 파란 눈이 동시에 융터르에게 꽂혔다. 먼저 신원을 밝히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되는 시선. 그는 마찬가지로 파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들에게 잘못 걸렸다. 어차피 형량도 짧은 거 그냥 못 본 척 누워 있을 걸.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그렇군요. 전 소피압니다. 이쪽은 비밀소녀 님이시고, 여기는 캘리칼리 님이십니다."
"캘리칼리 데이비슨. 똑바로 기억해 두라고. 이상하게 부르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
"좋습니다. 통성명도 끝냈으니 마저 나가봅시다."
여기 공기가 너무 우중충한 것 같지 않나요? 부드럽게 말한 비밀소녀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소피아의 옆에서 지도를 흘겨보았다.
"교도관들은 확실하게 처리하신 거겠죠?"
"당연하죠. 지금쯤 다 곯아떨어졌을 겁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화하는 그들은 조금 살벌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교도관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에 들어서려 할 때 한 번씩 알려줄 뿐, 융터르는 이성적인 판단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세간에서는 보통 내려놓았다고 표현하고는 하는 그런 상태.
어차피 다 잠들어 있을 교도관들이 모이는 곳을 말해 무엇하는가? 물론 식사를 했다면 다들 잠들어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눈앞의 이들처럼 이 교도소의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
"이런 건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뭐, 그냥 자주 보다 보니."
캘리칼리가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느꼈지만 마주 보지는 않았다. 시선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올려다보기엔 목 건강에 해롭다고 여겨질 만큼 까마득히 머나먼 높이였다.
"그나저나 지금 머리 쓰는 것도 그렇고. 딱 봐도 몸 쓰는 짓 하다가 잡혀온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너 뭐 하다가 잡혀왔냐?"
딱히 위협을 주려는 의도가 없어도 협박처럼 들릴 법한 어투. 커다란 덩치 덕분에 더욱 그러했다. 잠시 습관적으로 대화 상대의 의중을 분석하려던 융터르는 결국 가장 솔직하고 단순한 답변을 내놓았다.
"사기 치다가 잡혔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내 커다랗게 으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잇, 캘리칼리! 시끄럽잖습니까! 이러다 사람들 다 깨겠습니다!"
동료가 타박하든 말든, 캘리칼리는 호탕하게 말했다.
"역시 입을 잘 터는 이유가 있었구만!"
칭찬, 인가. 융터르는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세 명의 일행 중 가장 키가 크고 이상해 보이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이 모임에서 이상함은 신장과 비례하는 듯했다.
"음, 이미 몇몇은 깬 것 같네요-."
비밀소녀의 말대로, 교도관들의 공간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요약해 보자면 방금 그거 무슨 소리냐 정도가 될 듯한 목소리들이 점차 세를 불려 나갔다. 네 사람은 시선을 한 번 마주 보고는 멀지 않은 출구를 재빠르게 확인했다. 그 어떤 감시 인원도 없이 텅 비어있는 출구. 탈출을 꿈꾼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그리고 융터르를 제외한 세 사람이 뛰었다.
"···이거 발각당하면 제가 가장 먼저 잡히겠군요."
융터르는 쏜살같이 사라지는 세 뒤통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융터르! 안 뛰고 뭐 하는 겁니까? 빨리 오십시오!"
소피아가 출구 너머에서 그를 재촉했다. 유독 선명한 달빛이 세 사람의 등 뒤로 내려앉았다. 개성 강한 실루엣들 중 가장 커다란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머리 담당은 내가 가져오지."
캘리칼리의 가져오겠다는 말은 자신이 할 행동에 대한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굳이 자세히 묘사하고 싶지는 않은 순간이 지나고, 네 사람은 어느새 교도소에서 제법 떨어진, 외딴 도로의 갓길에 서 있었다.
"이번 탈옥도 성공이군요!"
언제 주워왔는지, 소피아는 빨간 파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융터르는 세상 독특해 보이는 세 범죄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융터르의 질문에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 근처부터 벗어나 보죠."
"좋은 생각입니다."
네 사람은 멀리서 다가오는 차 한 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품었다.
히치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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