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심리상담사

Avrora 2024. 4. 2. 22:39

 카르나르 융터르는 그 주를 '운이 몹시 안 좋았다'라고 서술하고 싶었다.
 마치 그간 용케 회피해 온 불운이 거칠게 한데 뭉쳐 그의 몸을 쓸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제법 쓰라렸다.
 
 그래도 초반엔 가벼웠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는데 오후에 비가 쏟아져 내리고, 신호등에서 번번이 빨간 불을 마주하는 바람에 예상한 도착 시간보다 훨씬 늦어지는 등. 상담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출몰하는 류의 진상들만 –가령 주변인에게 끌려오듯이 찾아와 그에게 '네가 뭘 아냐'며 호통을 내지른다거나– 평소보다 자주 보이는, 그래도 일상 속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들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커다란 불운의 시발점은 궁금한 것이 많은 한 내담자였다.
 
 "그런데, 심리학자라고 하셨죠?"
 
 같은 질문만 세 번째. 지금까지는 낮은 목소리로 잘 들리지 않도록 대충 얼버무리며 넘겼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책상 위 명패에 적혀 있는 '심리학사 카르나르 융터르'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내담자는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학위를 증명해 주는 무언가가 있는지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절반의 거짓을 내놓았고, 그 손님은 별말 없이 물러났다.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린 것은 애인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상담을 끝마치고 내담자를 내보낸 직후였다.
 
 "카르나르 융터르 씨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나름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이라고 자부하던 그였건만, 잠시 사고의 흐름이 멈춰 잠시 멍하니 뜸을 들이고 말았다.
 
 "카르나르 융터르 씨? 안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문 여십시오."
 
 그가 결백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찔리는 게 있는지라, 문을 열기 직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거울 속의 융터르는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답지 않게. 한 번의 심호흡과 함께, 의심스럽지 않을 정도로 당황한 표정을 지어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학위가 없는데 심리학자라고 칭하고 계신 것 같다고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학위증명서든, 졸업장이든. 뭐라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그날, 융터르는 처음으로 학력 위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꽤 무거운 벌금과, 5년의 영업 정지.
 그가 받은 처분이었다.
 
 몇 년간 해온 학력 위조를 발각당했으니 사기죄로 몇 달 정도 콩밥을 먹을 각오까지 했건만, 생각보다는 가벼웠다. 그렇다고 감옥에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만. 운 좋게도 상담비를 조금씩 높게 청구한 것은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서비스 업계는 값이 명백하게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빨리 짐을 빼고 나가라는 경찰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들어야만 했던 융터르는, 오랜만에 커다란 보스턴 백을 꺼내 들었다. 대학 다닐 때나 쓰던 건데, 이걸 이렇게 다시 보다니. 옷장 안에서도 꽤 두텁게 쌓인 먼지를 대충 툭툭 털어낸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상담비를 더 비싸게 받기라도 했을 텐데."
 
 뒤늦게 하는 의미 없는 후회였다.


 몇 년간 쌓인 흔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는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꼈다. 두꺼운 책과 서류철, 기타 소품들을 치우고 보니 좁다고만 생각했던 상담실이 유독 넓어 보였다. 임대료도 비쌌는데, 그냥 더 좁은 곳으로 갔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명패를 가방 안에 쑤셔 넣고 지퍼를 닫았다. 심리학사, 카르나르 융터르. 형체를 알아보려면 꽤나 고생을 해야 할 정도로 조각나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유일한 과거의 흔적이었다.

그는 상담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이젠 떠날 시간이었다. 또 다른 곳으로.

경찰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융터르에겐 5년의 영업 정지를 얌전히 지킬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다. 그는 애초에 그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5년간 먹고 살 수 있는 넉넉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직업으로 전향할 의사는 더더욱 없었으니까.

 몰래 하면 되지. 뭐, 어쩔 텐가. 암암리에 진행한 상담을 발견해 낸다면 민간인 사찰로 신고해 보상을 얻어낼 작정이다. 행정적 번거로움을 이용한 소소한 복수라고 할 수 있겠다.


카르나르 융터르는 치안이 비교적 좋지 않은 다른 도시에 정착했다. 그래도 밤에 돌아다니지만 않으면 나름 괜찮은 곳이다.
사건 사고가 많으니 고객은 많고, 경찰은 바쁘고. 그에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상담소를 차리기 전까지는 심령사진을 팔았다.
물론 조작이다.

꼬리가 얼마나 길어야 잡히는지를 대략 눈치챘기 때문에, 상담소를 차릴 자금에 살짝 못 미칠 무렵 그만두었다. 부업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그는 탁상 달력을 이리저리 넘기며 일정을 확인했다. 오늘 예정된 상담을 제외하면 당분간 다른 일정은 없었다. 아직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안정을 찾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학위가 없는, 속된 말로 사짜일 뿐 실력은 나쁘지 않은 그는 저번에도 입소문을 통해 손님을 끌어들였었다. 그 소문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알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때마침 내담자가 들어오고, 융터르는 가볍게 목례했다.

학력 위조라.
그렇다면 학력 얘기를 아예 안 꺼내면 그만 아닌가?

"심리상담사, 카르나르 융터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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