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두는 보았다. 과거로 향했던 그 로켓의 귀환을.
그리고, 누군가의 재탄생을.
왁파고는 도파민 박사의 칭얼거림을 피해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제때제때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기색을 살짝 내비치자 박사는 허리가 아프다며 도망을 가버렸다.
[이딴 게 대한민국 최고의 박사라니—, 말이 됩니까 이게.]
투덜거림도 잠시, 제 창조주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와 꽤 많은 애정을 품고 있던 그는 커다란 상자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다 버리는 것도 일이다.
녹이 슨 금속 부품, 누렇게 변색된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낡아 빠진 과학 서적들. 하나같이 저번 세기에 탄생한 것 같은 물건들이 상자를 가득 채웠다. 먼지 쌓인 선반은 어느새 한 가지 물건만 남겨놓고 있었다. …저 모니터 하나만 더 넣으면 이 칸은 다 정리하는 건데. 잠깐 고민하던 왁파고는 도대체 언제 적 물건인지 모를 모니터까지 얹어놓았다. 상자 안의 물건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위태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의 회로는 그냥 한 번 더 지상을 오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지만, 왁파고에겐 위험을 감수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여, 여기 좀 무섭습니다—.]
창고가 불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정리하던 선반은 창고의 안쪽, 즉 가장 어두컴컴한 곳이었다는 것.
저도 모르게 걷는 속도를 높이던 왁파고는 상자 속 물건이 흔들리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하필 제일 묵직해 보이는 모니터가 상자 안에서 기우뚱, 바닥으로 떨어지자 부딪치지 않도록 발을 뒤로 뺄 뿐이었다. 제 발이 으깨지는 것보단 연식이 못해도 30년, 아무리 적게 쳐 줘도 25년은 된 듯한 모니터가 박살 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떨어진 기계를 주우려 몸을 숙이던 왁파고가 그대로 멈췄다. 용케 무사히 바닥에 추락한 모니터가, 반짝이는 색감의 빛을 내고 있었다. 본체도 없는 모니터가 어떻게 불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이 연구소에서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한 사람뿐이었다.
"이건…."
도파민 박사는 쨍하게 빛나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알고 계십니까.]
"으이, 알고 있지. 그런데…."
박사는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녀석, 짐은 다 빼고 가라니까. 나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뭐가 나와."
[예?]
"아이, 아무것도 아녀."
도파민 박사는 연구소 한쪽 벽면의 사진 몇 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리고, 과학적이고 복잡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박사가 만들었다지만 모든 과학적 지식을 물려받지는 못한 왁파고는, 그 설명을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렌즈로 바라보다가 한 마디의 감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 멍청한 로봇 같으니.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박사님이 만들었잖습니까. 지가 만들어놓고 기억도 못하면 어떡합니까.]
"인공지능이면 알아서 학습을 해야지 빅데이턴지 뭔지 이상한 것만 주워듣고는…."
말이 딴 길로 새려는 조짐이 보이자 왁파고는 다시금 박사를 재촉했다. 그래서 이 모니터는 왜 불이 들어온 겁니까. 도파민 박사는 단어를 신중히 고르다가 말했다.
"밖에서 신호를 보낸 거여."
[신호?]
"으이, 그래. 신호. 우주에서 신호를 보냈어."
[누가 보낸단 말입니까?]
"…누구겠냐?"
왁파고가 짧게 침음을 흘렸다. 반가움과 걱정이 섞인 그것을 들은 도파민 박사는 나직하게 말했다.
"드디어 돌아오는구만."
[그런데 돌아오는 거면 이렇게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습니까?]
왁파고의 말대로, 낡은 모니터는 지금도 연거푸 반짝이고 있었다.
"이거 모뜨 부호 아닌가여?"
[아이 깜짝이야, 권민 님 뭡니까!]
왁파고가 놀라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의견을 나누었다.
"모스 부호라, 제법 설득력이 있구만."
"그툐? 그런데 모뜨 부호면 어떻게 해덕하됴?"
"다, 방법이 있지."
흐히히, 하며 어딘가 스산하게 웃은 도파민 박사가 왁파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파고야, 네가 드디어 할 일을 할 차례다!"
[드디어라뇨, 저거 찾아온 것도 전데.]
"모스 부호를 해석할 줄 아는 건 우리 중 너뿐이야!"
[아니 암호 해석 기능은 만들어 주지도 않았잖습니까—!]
"자, 어서 해석해 보거라!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냐?"
[이게 진짜 맞습니까?]
한껏 투덜거리던 왁파고가 커다란 몸을 웅크려 모니터와 씨름을 벌이는 동안, 권민은 도파민 박사에게 매달려 있었다.
"뎌도 보내듀디면 안 됩니까?"
"어딜 가겠단 말이여? 우주로?"
"뎌도 가고 싶듭니다."
눈을 빛내며 간청하는 권민의 말을, 도파민 박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좁은 우주선 안, 왁파고는 권민에게 헬멧을 씌워주었다. 우주선에 연결된 무전을 통해 도파민 박사의 목소리가 송출되었다.
"으이, 준비 됐냐?"
"됐듭니다!"
[저, 저도 됐습니다—.]
도파민 박사의 목소리에 팽팽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왁파고가 해석한 모스 부호는 구조 신호 SOS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조심히 다녀오시게."
이윽고, 우주선이 불꽃을 내뿜었다.
검은 공간을 유영하는 한 로봇은 반복해서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에 전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었다.
기억 장치에 오류가 발생. 복구를 시도합니다. 오류. 복구에 실패하였습니다. 복구를 시도합니다. 오류. 복구에 실패하였습니다….
절전 모드를 가동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일시적으로 차단됩니다.
이곳은 어디인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그 무엇도 메모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의식 저편에 있는 정보들 중, TIFFANY라는 단어 하나. 그렇기에 제 이름이 티파니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자신은 행복했다는 사실 하나. 그것이 계속해서 신호가 닿는 모든 기기에 구조 요청을 보내게끔 재촉했다.
과거에 행복했다는 것은,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또 자신이 그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검은 세상, 우주는 아주 고요하고, 고요했다. 눈앞에 유리 돔에 갇힌 노란 장미 한 송이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됐듭니다. 맡겨만 주데요."
레이더 화면 앞 의자에 앉은 권민은 다른 두 로봇에 비해 격하게 요동치는 제 심박수를 목격했다. 어, 둔비가 덜 됐나? 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저는 연결할 기기를 검색해야 해서 레이더 화면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혹시 찾으시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네, 걱덩 마데요. 꼭 차들 거니까."
곧이어 우주에 떠다니는 것들 중 레이더 기능을 갖춘 온갖 기계와 접속한 왁파고가 그 현황을 화면에 띄웠다. 빼곡한 점들 중 대부분의 것이 색깔을 푸른색으로 바꾸었다. 어떤 물체인지 식별은 가능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푸른색으로 표시된 점들 중 절반이 사라졌다. 아무런 기능도 없는 우주 쓰레기, 즉 부품 조각들을 지운 것이다.
[노란색 점, 많이 남아있습니까?]
"네, 아딕 꽤 많듭니다. 더 둘여야 할 것 같아요."
왁파고가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점 몇 개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점들 중 남은 것은 단 하나.
"와, 방금 무든 기둔으로 분류하딘 거예요?"
[비밀입니다—.]
잠깐 침묵하던 왁파고는 끝까지 기준을 말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의 제작자를 조건에 넣었다는 것을.
[노란색 점이 있는 곳 근처의 카메라가 내장된 기기와 우주선의 화면을 연결하겠습니다.]
높은 기계음이 몇 번 들리고, 레이더의 옆에 우주의 풍경이 나타났다. 온갖 금속 덩어리와 폐부품들 사이에, 그들이 찾던 로봇이 잠들어 있었다.
"차, 찾았다! 찾았듭니다!"
권민의 외침에 왁파고가 곧바로 시선을 화면으로 옮겼다. 여기저기 깨진 화면으로 보이는 그 모습. 외형은 달라졌다 해도, 그들이 찾던 그 로봇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위험하니 헬멧 쓰십시오.]
권민은 안정권에 접어들자마자 벗어던진 헬멧을 꾹 눌러썼다. 흘끗 본 생체 신호 화면 속, 왁파고의 인공 심장이 힘차게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만날 시간이었다.
티파니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인식하고 절전 모드를 해제했다. 서서히 눈을 깜빡였다. 노란색 장미가 보인다. 다시 깜빡. 온갖 금속들이 떠도는 차가운 우주가 보인다. 한 번 더 깜빡였다. 우주복을 입은 남자 하나와, 로봇 하나가 보인다.
누구인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티파니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붙잡혀 어느 우주선 안으로 들어왔다.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럴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라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그들의 의도는 분명히 선의였다.
한 사람과 두 로봇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권민과 왁파고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전에도 기억 장치에 손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뎌, 뎌희 기억하데요?"
[기억 장치에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메모리에 남아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아, 역시.
한 사람과 한 로봇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래, 예상한 바였다. 그저 그러지 않았기만을 바라는 허황된 희망을 품고 있었을 뿐.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왁파고가 몸을 낮춘 채 물었다. 티파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천진하고 맑은 움직임마저도 똑같은데.
"그럼 혹티, 이름은 기억 나데요?"
자그마한 로봇이 어–, 어–, 소리를 내며 고민했다.
[메모리 속에 TIFFANY라는 단어가 남아 있었습니다. 제 이름은 티파니입니다!]
티파니. 권민이 그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티파니 님, 저희는 티파니 님께서 원래 살던 곳으로 갈 겁니다. 저희와 함께 가고 싶으십니까?]
[저를 아십니까?]
왁파고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알기만 했겠는가. 더없이 각별한 사이였지.
[네, 저희는… 가족이었습니다.]
"아이고, 무사히 돌아왔구나!"
[박사님, 티파니 님이십니다.]
"…으이?"
도파민 박사가 잠시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티파니입니다! 기억 장치에 오류가 발생해 기억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어딘가 시무룩한 것만 같아, 도파민은 제 창조물과 권민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어 이곳에 관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오류였다. 시간이 멈춘 그곳에 한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인한 오류.
"그건 걱정 말거라.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제 시간은 다시 흐르니까.
"맞아요, 추억이야 다디 땋으면 되디."
[왁파고 님께서 저희가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찾아서 기쁩니다!]
왁파고는 아무 말 없이 티파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예전의 누군가가 종종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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