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거야."
아, 인간의 거짓말이란 참으로 무력한 것이다.
[경고. 기내 산소 농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경고. 기내 산소 농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투박한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우주선 안에서, 티파니는 제 마스터가 우주복을 입는 것을 도왔다.
"파니야."
[네?]
마스터는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리고 힘겹게 내뱉듯 나온 대답은 많은 것을 품고 있어, 티파니에게 씁쓸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CPU의 한편에서 반복하여 계산하던, 안전 귀환의 가능성이 쉴 틈 없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 숫자는 잠시 렌즈를 깜빡이면 10퍼센트씩, 또 잠깐이라도 다른 곳에 신경을 쏟거든 금세 15퍼센트가 떨어졌다.
티파니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터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서글픈 진실에 대해서만큼은 침묵을 택했다.
"파니야, 우주선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마스터가 담백하게 물었다. 티파니가 우주선 시스템에 접속해 상태를 확인하였다. 상태는 몹시 암울했다. 어두운 미래를 본 티파니가 함구하자, 마스터는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누가 이런 현상을 예측했을까. 하다못해 그의 옆에 있는 초고성능 AI조차 알지 못했던 것을.
그들의 사정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낮은 확률의 불운이 그들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 도파민 박사는 우주선의 상태를 몇 번이나 점검했고, 박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튼튼한 우주선이 만들어졌다고 자부했다. 지상에 남은 둘은 조수와 조그마한 로봇을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그렇기에, 그 둘이 그렇게까지 자신감을 가지고 그들을 보내주었으므로, 그것은 순전하고도 지독한 불운이었다.
우주선과 충돌할 가능성이 3퍼센트 미만인 아주 작은 운석이었다. 고작 1.7퍼센트였단 말이다. 1.7퍼센트. 그런데 그 확률에 걸리는 게 도대체 세상 어디 있는가? 그들은 그야말로 기적과 다름없는 확률을 뚫었다. 그 기적이 부정적인 방향의 기적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테지.
마스터는 우주복의 헬멧을 쓰기 직전 모자를 벗어던졌다. 생각해 내야만 했다. 티파니가 온전하게 그녀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어차피 우주선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어버린 이상, 그가 살아 돌아갈 가능성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제 딸과도 같은 이 로봇만큼은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파니야, 일단 최대한 충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헬멧에 연결된 통신을 통해 인공적으로 설정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경고. 기내 산소 농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경고. 기내 산소 농도가—]
"나도 알아, 이 망할 자식아. 누가 그걸 모르겠냐?"
그건 우리 깡통도 알겠다. 지금쯤 지상에서 도파민 박사의 심부름을 하고 있을 왁파고를 떠올린 마스터가 킬킬 웃었다. 그는 제 우주복의 팔뚝에 달린 디스플레이를 조작했다. 티파니의 원활한 귀환을 위한 사전 준비였다.
"이거, 유언 남길 시간은 있으려나."
[마스터!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몸속에 기름을 들이붓던 티파니가 그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외쳤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논하는 제 마스터가 원망스러웠다. 인간들은 원래 다 이런 걸까? 늘 죽음의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기에 주변에 남을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무감각하게 언급하는 것일까?
"어어, 그래. 무사히 돌아갈 거야. 걱정하지 마."
티파니는 내심 안심했다. 마스터의 그 말만 들었을 땐 적어도 살아남아 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았기에. 하지만 그녀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마스터는 무사히 돌아가는 주체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교묘한 말장난이되, 거짓말은 아니었다.
로봇들은 인간의 언어적 표현 및 비언어적 표현을 감지해 말의 진위 여부를 가늠하고는 했고, 그 결과는 제법 높은 정확도를 자랑했다. 그 예리한 판단력의 그물을 피하기 위해, 마스터는 일부분에 검은 잉크를 두껍게 칠한 진실을 내놓았다. 무사히 돌아갈 것이다. 티파니가.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다. 그는 제 생존에 대해서는 말을 얹지 않았다. 하지만 티파니는 주체가 생략된 그 문장의 주어를 예측할 것이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끔은 그보다도 더 감정이 충만해 보이는 저 로봇은, 그가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어떻게든 그와 함께 돌아가기 위해 애쓸 테니. 하지만 강철 몸의 상상 그 이상으로, 탄소 덩어리 몸을 가진 인간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별일 없어도 어느 날 픽 쓰러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니까. 괜한 희망을 쥐여주었다가 더 큰 상심을 얻고 슬퍼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무래도 감정 프로그램을 과히 풍부한 버전으로 설치해 준 모양이다. 좀 적당히 연구할 걸 그랬나 싶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는 티파니가 인간들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순간이 없기를 바랐다. 연료 주입을 섭취형으로 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제가 맛있는 음식이든, 슬픈 영화든. 그녀가 인간들과 함께 웃고 울기를 원했다. 그래도 나 때문에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마스터는 손목의 디스플레이를 조작하며 물었다.
"우주선, 곧 터지겠지?"
[…이대로 간다면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얼마나 걸리냐?"
[아마 3, 3…]
티파니의 목소리에 섬뜩한 기계음이 묻어 나왔다.
"왜? 왜 그래? 뭔 문제 생겼어?"
[선체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이윽고 거대한 폭음이 침몰해 가는 우주선을 가득 메웠다.
[마스터, 마스터! 눈을 뜨십시오!]
삐—, 하는 이명이 뇌를 뒤흔들었다. 사방은 온통 검었고, 주변에 우주선이었던 것의 파편들이 난자했다. 티파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들여다보며 그의 양팔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녀 덕에 멀리 날아가지 않은 모양이다.
"…이야, 헬멧 내구도 미쳤는데?"
와중에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티파니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으이그. 그는 괜히 말을 더 덧붙였다.
"우주선 외벽을 이렇게 좀 만들지…, 그깟 돌멩이 하나 날아왔다고 그대로 박살 나는 게 말이 돼? 안 그래, 파니야?"
티파니는 대답이 없었다. 마스터는 수심으로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파니야."
[…….]
"파니야."
티파니가 고개를 숙였다. 꾹 다문 입술, 질끈 감은 눈. 금방이라도 눈물이 아롱져 쏟아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로봇은 울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마스터는 그저 우주복 탓에 둔해진 손을 올려 티파니의 어깨를 도닥여줄 뿐이었다.
"티파니."
[…네?]
"구조 신호 보내고 있지? 계속 보내. 지구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니까 신호가 못 닿을 만큼 멀지는 않아. 지상에 있는 두 겁쟁이 양반, 구조 신호 받으면 어떻게든 올 거야."
이건 명령이다. 티파니는 평소답지 않게 강압적인 발화를 덧붙이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메모리 속에 각인된, 옛 소설에서 등장했었다는 로봇 3원칙을 새기며.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평소 티파니에게 부탁이라는 표현을 더 애용하는 마스터 또한 이 원칙을 알고 있기에 명령이라 말한 것이리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주를 돌아다니지 마. 이 자리를 벗어나선 안 돼. 이것도 명령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괜히 알면서도 묻는다. 왜 그런, 유언 같은 말을 하느냐고. 그 질문을 들은 것이 분명한 마스터는 한참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기만 하다가 대뜸 딴소리를 했다.
"파니야, 살아있는 거랑 살아가는 건 다르다?"
[…네?]
"내가 여기서 언제 올지 모를 구조를 기다리면서 계속 숨만 쉬고 있으면, 그건 살아있는 게 되는 거야."
구조가 오기 전에 나는 굶어 죽을 테니까. 마스터는 그 사족을 더하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언급해 같이 상처받으면 무엇하랴. 적어도 작별만큼은 웃으며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만 붙어서 우주를 유영하는 건, 그건 살아가는 게 아니야. 살아있는 거지."
티파니는 여전히 제 마스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은 기계보다 훨씬 죽음과 가까운 만큼 삶과도 가까워서 그런 걸까. 그렇기에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깊게 통찰하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지식욕을 품고, 더 나은 삶과 죽음을 꿈꾸는 것일까.
"그런데 널 위해 떠나는 걸 택하는 순간, 나는 살아가게 되는 거야.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 선택을 하는 거니까."
마스터가 킬킬 웃었다. 헬멧의 두터운 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비치는 얼굴의 형상은, 조금은 슬퍼 보이기도 했다.
"말이 좀 웃기네. 살아가기 위해 죽는다니. 뭐, 대충 인간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해라."
죽음까지 선택하고 싶어 하는 거만한 인간의 자존심. 마스터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마지막 말은 그 자신에게 당부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것은 그의 존엄성을 위한 행동이라고. 그렇기에, 마지막이 될 것임을 확신한 티파니는 그를 더 꽉 부여잡았다.
그들의 인사를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
"파니야, 꼭 잘 살아가줘라."
그리고, 마스터는 티파니의 작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서 떼어냈다. 체온이 닿기를 바라는 듯 단단한 그것을 한참 쥐고 있던 그는, 마지막으로 티파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녕, 꼭 잘 지내야 돼. 박사님 잘 부탁해. 왁파고랑 싸우지 말고."
티파니는 그 담담한 인사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일까, 목에서 뭔가가 울컥거리며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마스터의 손을 꼭 붙잡고,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난 괜찮다고. 당신이 없어도 웃으며 지낼 수 있다고. 입 밖으로 냈다간 다 티가 날 것이 분명한 그 문장을, 표정으로 전했다. 아무런 후회 따위 하지 않는 척하며.
그들은 서로의 손을 놓았다. 마스터는 우주복에 내장된 추진 장치로 티파니에게서 서서히 멀어졌다. 늘 무뚝뚝했던 그의 얼굴엔 따듯하고, 약간은 어색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마스터가 손목의 장치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권한이 삭제되었습니다. 일부 메모리를 삭제합니다.]
[메모리 삭제 저지를 시도합니다.]
[…오류. 오류. 권한이 없습니다.]
그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스터는 마치 강한 필터를 씌운 것처럼 지지직거리는 덩어리가 되었다.
왜,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티파니는 멀어져 가는 그 형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물건들은 우주선에 비하면 온전했다. 그리고, 그가 쓰던 모자도.
티파니는 빨갛고 노란, 남들이 유치하다고 놀리곤 했던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마스터가 추진 장치를 사용한 영향이 남은 것인가. 야속하게도 그것은 제 손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스터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붙잡고 싶었건만, 이 광활한 우주는 그것조차 허용치 않았다.
이대로, 이렇게 사라져 버리면 나는 어떻게 버티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젠 메모리 속 마스터의 모습마저도 지직거리며 흐려지고 있었다. 억지로 데이터를 떼어내는 바람에 그 검은 공백이 그대로 드러나는 기억들을 보며, 티파니는 중얼거렸다.
[기억 장치에 오류가 발생하여….]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상태였는데. 오류가 발생한 기억 장치. 사라져버린 마스터와의 기억. 그리고, 어딘지 모를 공간에 홀로 남겨져 헤매던 것. 모든 것이 판박이인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티파니는 신호가 닿는 모든 기기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스터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로봇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티파니는 처음으로 마스터의 명령을 어기고 움직였다. 자신의 존재를 두려움이라는 낯선 감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프로펠러가 부러지고 몇 군데는 찢어진 모자를 향해. 이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았고, 이 자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당신도 이 정도는 허용해 주시겠죠? 마스터.
티파니는 마스터의 모자를 품에 꼭 안았다.
담담하고, 눈물 한 방울 없되, 그 어떤 인사보다도 슬픈.
그들의 작별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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