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을 입은 이들이 그들의 차창 유리를 똑똑 두드렸다.
"아, 이런 젠장."
소피아가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나직하게 뇌까림으로써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한 탕을 크게 해 먹고 도주하려는 선량하고 악독하며 정의롭고 제정신 아닌 범죄자 집단에게 가장 성가신 존재는 무엇인가?
정답은 바로 경찰이다.
똑똑똑.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더 성급해졌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비밀소녀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어쩌면 좋죠?"
"융터르 자네가 입 좀 털어 봐."
"제가요?"
"예. 그럼 저희가 합니까?"
소피아의 반문에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당장 자신의 모습을 볼 방법은 없지만, 새카만 목티와 정장 재킷을 걸친, 제법 장신인 남자가 빨갛고 조그만 차에서 나오는 꼴이 퍽 우스웠을 테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수상한 사람 못 보셨습니까? 복면 쓴 도둑이 출몰했다던데."
다행스럽게도 거짓말을 업으로 삼은 그는 태연하게 발뺌했다.
"아, 저는 못 본 것 같습니다."
"꽤 소란스러웠을 텐데 못 보셨구나. 어디 계셨었습니까?"
대충 흘겨본 간판의 이름을 빠르게 읊자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1차 테스트는 통과였다.
"아, 웬 덩치가 엄청 큰 남자랑 주황 머리의 여자도 있었다더라고요. 둘 중 하나라도 보셨습니까?"
하여간에 하나같이 눈에 띄어서 도움이 되는 작자가 없었다. 범죄자 주제에 왜들 이리 개성이 넘치는 건지. 차창을 노려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키며, 융터르는 곤란한 미소를 새긴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못 봤습니다. 아는 게 없어서 죄송하네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 경찰이 클립보드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목소리 낮은 남자가… 응?"
"예?"
망했네. 융터르는 차창을 돌아보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처참하게 망해버렸음을 전달하면 망설임 없이 그를 버리고 떠날 사람들이었다.
"어,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실래요? 어디 가진 마시고."
등을 돌린 경찰은 무전기를 조작하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뭐라고 말하는 입모양으로 미루어보아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융터르가 재빠르게 차창에 고개를 들이박듯 제 일당을 내려다보았다. 겨울철 야외 주차장에 방치된 차량의 금속 프레임에 올라간 손이 시렸다.
"저희 들켰는데요."
그 말에 뒷좌석의 차창이 느리게 내려갔다. 드러난 얼굴은 상체를 한껏 숙인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캘리 칼리의 것이었다.
"뭐? 왜?"
"아니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십시오, 이 조합으로 안 들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캘리 칼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턱에 손가락을 얹어가며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구만. 싱겁게 인정한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외에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그래서 어떡할 겁니까?"
"음, 일단 타시죠?"
이윽고, 자그마한 차량은 외형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꾹 밟힌 액셀러레이터에서 어딘가 과부하가 오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조수석의 융터르가 사이드미러 속 경찰차를 흘기자 기다렸다는 듯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내주는 도망이었다.
소란스러운 바깥과 달리 차 안은 잠잠했다. 경찰의 추적을 얼마나 많이 빠져나가본 걸까.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태연한 태도에 융터르는 그런 궁금증을 품었다.
"따돌릴 방법은 있으시죠?"
"그냥 달리다 보면 되겠지. 어이, 소피아. 이쪽 지리는 잘 알고 있지?"
"아, 물론이죠. 이쪽이 제 나와바립니다!"
신뢰도가 떨어졌다. 경찰의 추적을 피한 게 아니라 항상 감옥에 갇힌 뒤 탈옥한 것 아닐까. 그들과의 정신 사납고 평화로웠던 첫 만남을 상기해 봤을 때 따돌린 것보단 탈옥 쪽이 더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어쩌다 이 인간들 사이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참, 그래, 직접 끼워달라고 했었지. 정말 끼워줄 줄은 몰랐지만. 그는 꿍얼거리려던 입을 다물었다.
"걱정 마십쇼. 탈옥이 한 번이 힘들지 그다음부터는 껌입니다!"
"그것참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소피아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비틀며 태평하게 말하자 융터르가 이죽거렸다. 이들과 함께한 탈옥은 이상하리만치 순탄했지만 언제나 그런 행운이 함께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다시, 사이렌과 차량 번호. 그리고 협박과 회유.
"진짜 봐줄까?"
"봐줄 리가 없죠."
"봐주겠습니까?"
비밀소녀의 핀잔에 이어 소피아와 융터르가 화음을 이루듯 캘리 칼리를 구박했다. 쩝, 소리를 내며 그가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댔다. 차체에 비해 과하게 커다란 덩치 탓에 그는 여전히 목과 허리를 접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 차가 너무 눈에 띄지 않나요?"
멀미가 심해질 듯 격정적인 좌회전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낸 –그의 체구를 고려했을 때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는– 비밀소녀의 나긋한 음성에 핸들을 본 상태로 되돌린 소피아가 흔쾌히 말했다.
"그럼 바꿉시다!"
"몰래 움직일 만한 장소는 차치하고서라도, 갈아탈 차가 있긴 합니까?"
"널린 게 차잖아. 여기 숨을 만한 곳 없나?"
"아마도 이 근방에 있긴 할 겁니다."
"아니, 아마도 있긴 할 거는 건 또 뭡니까? 불확실이 두 번 겹쳐지면 그냥 없다고 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게 한국어에서는 아직 부정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대꾸한 소피아는 차를 횡단보도 앞에 세웠다. 적신호를 보내는 신호등 아래, 깔끔한 감속에 더해 정지선까지 완벽하게 지켰기에 칭찬받아 마땅한 정석적 운전이었다. 하지만 그 차에 타고 있는 것은 네 명의 범죄자였고.
"저희 지금 경찰한테 쫓기고 있습니다, 소피아 님."
"압니다. 그래도 신호는 지켜야죠."
저는 선량하니까. 그렇게 덧붙인 말에 융터르는 속이 터진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건조한 날씨에 기승을 부리는 정전기 탓에 몇 가닥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 번 선량했다간 흉악 범죄자들과 합숙하게 생겼군요."
"우리가 흉악 범죄자 아닌가?"
"사기는 법적으로 그 규모에 따라–"
"경찰 없는데요, 융터르 님?"
비밀소녀의 맑은 목소리에 융터르가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그 어떤 차량도 없이 한산한 도롯가가 그를 반겨주었다.
"대체 왜."
"아까 앞 신호에서 걸려서 멈추던데."
"대체 왜."
추격전 중이면서 신호를 지킨다고? 묻지도 않은 융터르의 질문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소피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게 업계 룰입니다!"
추격전을 업계라고 표현하는 뻔뻔스러움에 한 번, 이딴 걸 규칙으로 정한 업계에 또 한 번. 그는 평소보다 두 배 깊게 한숨을 내쉼으로써 모든 의사 표현을 대체했다. 진짜 이해 못 할 족속들.
비밀소녀가 상체를 유연하게 비틀어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관심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무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 폭력적인 크기의 소리를 모두가 들었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대규모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신호는 철저히 준수하는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신호등에 꽂혔다.
"언제 바뀝니까?"
"융터르 쫄았습니까?"
날도 추운데 굳이 다시 감옥에 들어갈 이유가–. 융터르의 서두와 동시에 신호가 전환되었다. 덕분에 몸이 뒤로 쏠린 융터르가 되는 대로 얼굴을 찡그리자 캘리 칼리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흐하하, 꽉 잡아라!"
어느 뒷골목에 들어서고 나서야 멈춰 선 차 안에서 네 사람이 빠져나왔다. 유달리 안색이 파리해진 융터르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중얼거렸다.
"뭐 이렇게 끈질기게…."
"그러게요–, 평소엔 저렇게 열심히 쫓아오지도 않으면서."
"열정적인 타입인가 보죠 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소피아가 햇살조차 들지 않는 깊은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썩어가는 나무판자를 치우는 그에게 캘리 칼리가 물었다.
"여긴 어디냐?"
"말했잖습니까. 여기가 제 나와바리라고."
나와바리에 아지트 하나쯤은 있어야지. 잘 보이지도 않는 육중한 철문을 밀어젖힌 그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어딘가 기묘하지만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환영합니다!"
그 발랄한 인사와는 대비되게도, 소피아의 아지트는 지독하리만치 음침했다. 전선줄이 그대로 노출된 스위치를 더듬어 불을 켠 융터르는 빛의 힘으로 더욱 더러워 보이는 아지트–소굴(lair)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듯한–를 이모저모 뜯어보았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상당히 예스러운 천소파와 위태롭게 깜빡거리는 백열전구. 몇 가구에서 뜯어온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소품들이 어지러우면서도 정성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어이 소피아, 꼴이 이게 뭐냐?"
"50년 정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버려진 장소 같군요."
"잘 관리하셨어야죠. 정말, 먼지가 이게 뭐예요?"
소피아가 안 그래도 커다랗고 파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휘두름으로써 억울함을 한껏 표출했다.
"아잇, 진짜! 위장 모릅니까, 위장? 이렇게 해두면 아무도 안 건드립니다!"
"40년은 묵은 것 같이 생긴 소파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 죽어가는 전구 밑에 전 세계의 관광객용 싸구려 기념품들이 이렇게 난잡하게 널려 있으면 캘리 칼리 님도 안 건드립니다."
나 왜? 캘리 칼리의 얼빠진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캘칼 님이 보이면 다 건드리는 바보인 줄 아십니까?"
"맞지 않나요?"
비밀소녀의 질문에 소피아가 캘리 칼리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유적지에 고인 괴상한 물은 마셔도 아무거나 만지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편을 들어주는 겁니까 마는 겁니까?"
"들어주는 거죠!"
그들의 대화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한 귀로 흘려듣던 캘리 칼리가 다 무너져가는 소파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가 앉으면 무너지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임이 뻔한 얼굴을 목이 부러져라 올려다본 비밀소녀가 손짓으로 그를 말렸다.
결국 먼지 가득한 바닥에 옹색하게 몸을 구기려다가 제 어깨 높이의 선반을 발견한 그가 자연스럽게 팔을 걸쳤다. 요란스레 비명을 지르면서도 용케 버텨낸 그것에 세 사람의 시선이 몰렸다.
"그래서, 언제 나가니?"
"경찰이 가야 나가겠죠?"
"경찰이 간 건 어떻게 아는데?"
캘리 칼리의 질문에 소피아가 턱에 손가락을 얹었다. 선글라스의 빨간 가로줄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유달리 초점이 없어 보였다. 그는 이윽고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모르겠습니다?"
무책임한 발언을 던졌다. 융터르가 오늘 들어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한숨을 쉬었다.
"이 대책 없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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