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고민제로

Avrora 2025. 2. 22. 00:01

 "이야, 옷은 언제 갈아입은 겁니까?"
 
 소피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옷 갈아입는 김에 머리도 자르지 그랬습니까?"
 
 그 말에 피식, 답지 않게 작은 웃음소리만을 흘린 거구의 사내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어떤 답변을 얻기라도 했는지, 소피아는 기대어 있던 차체에서 몸을 일으켰다. 클래식 오픈카의 기다란 범퍼를 두어 번 두드리며 소피아가 말했다.
 
 "자, 잘 빠진 녀석으로 가져왔습니다. 타십쇼."


 "이제 뭐 하실 겁니까?"
 "글쎄."
 
 언제나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말고의 정신으로 잡다한 것은 생각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다. 이제 와서 계획을 생각할 리도 없고, 건설적이긴커녕 멀쩡한 계획을 세울 리도 만무했다.
 
 "전에 하던 거나 할까?"
 "뭘–, 아, 고민해결소요?"
 
 운전대를 잡은 소피아가 느긋하게 차를 돌리며 되물었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는 지당한 사고방식에서 시작된 그 소소한 사업. 아지트의 앞에 차를 세운 소피아가 핸들에 손목을 턱 걸쳤다.
 
 "거기 사무실이…, 아직 있나?"
 "네가 모르면 어떡해?"
 "아니 거기까지 갈 일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치열한 눈싸움 끝에 결국 패배한 소피아가 아으, 소리를 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심각하게 추운 날씨도 아니건만 엔진은 올드 카에 본래부터 장착되어 있었음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겔겔 소리를 내었다.

 사시사철 뜨거운 태양빛이 작렬하는 감옥 부근 지역과는 달리 도심은 싸락눈이 조금씩 날리는 늦겨울의 날씨였다. 그 와중에도 낭만은 포기할 수 없기에 그리고 누군가의 허리 건강을 위해 여전히 열린 차체의 안으로 눈송이들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전면 유리에 맺혀 금세 물방울이 되어버리는 작은 살얼음 조각들을 보던 소피아가 투덜거렸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쪽까지 갑니까?"
 
 그쪽. 그가 수감되어 있었던, 결국 두꺼운 문짝이 작살 나버린 그 감옥은 웬만한 범죄로는 그림자조차 들여놓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 감옥에 들어가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었다는 것은.

 "설마 독방 썼습니까? 감옥에서 쌈박질이라도 했습니까?"
 "나도 몰라."
 
 대답하기
싫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태도에 소피아가 한숨을 쉬었다. 얼굴에 흉터까지 늘어서 온 꼬락서니가 여간 험난한 옥살이가 아니었음을 방증했다. 아무래도 저는 저 감옥에 넣지 말아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고요히 눈 나리는 잿빛 도시의 창백한 도로를 강렬한 색조의 올드카가 가로질렀다. 찬바람이 불자 차내의 건조하고 따뜻한 공기가 요란스러운 음악의 쿵쿵대는 진동에 맞춰 날아갔다. 소피아는 반팔 반바지 차림의 캘리 칼리를 흘긋 쳐다보았다. 저대로 둬도 괜찮겠지 뭐. 감기는 절대로 안 걸릴 것처럼 생겼으니까.

 "동네가 좀 바뀐 것 같은데?"
 "캘칼 님이 빵 들어가고 나서 재개발인가 뭔가 한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재개발?"

 "에에, 재개발… 어."
 
 손가락을 튕겨 방향지시등을 켠 소피아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뒤에 차가 있었다면 눈에 띄는 이유도 없으면서 스키드 마크까지 남겨가며 급정지한 차량에게 원색적인 욕설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잠시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없어졌을 수도 있겠는데."
 "비싼 물건은 일단 빼두길 잘했군요."
 "간 적 없다며?"
 "제가 언제 간 적이 없다고 했습니까?"
 
 그 반문에 소피아가 했던 말을 기억 속에서 더듬은 캘리 칼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갈 일이 없다고 했었지. 깔끔한 인정에 파란 눈을 굴린 소피아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캘리 칼리는 도시의 외곽으로 빠져나갈수록 세상의 색채가 돌아오고 있는 듯한 광경을 낮은 차량 프레임 너머로 바라보았다. 겨울의 칼바람에 그의 긴 머리칼이 거칠게 나부꼈다. 묶을까 고민되지만 머리끈이 없었다. 애송이한테서 하나 받아올 걸 그랬나.


 "그나저나 왜 갑자기 나온 겁니까? 한동안 무슨 거기 볼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얌전히 있었으면서."
 
 모범수가 되는 게 목표인 줄 알았습니다. 소피아의 은근한 물음에 그는 툴툴대듯 답했다.

 "밥이 맛이 없었어. 참아보려고 했는데."
 "아아."
 
 무슨 마음인지 알기에 짤막한 소리로 나름의 공감–남들은 절대로 그렇게 봐주지 않을–을 표한 소피아가 인적 드문 길로 차를 들였다. 그들의 허름한 사무실이 있어야 할 곳에서 그들을 반기는 것은.
 
 "저건 또 뭐냐."
 "뭘 물어봅니까. 누가 봐도 백화점인데."
 
 으리으리한 쇼핑몰이었다. 타다 남은 담배꽁초와 자세히 들여다봤다간 헛구역질이 나올 만한 것들이 가득한 골목길이었던 곳에 냅다 대형 프랜차이즈 백화점을 세운 기개도 기개였으나 무엇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건물이 멀쩡하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믿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결국 그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렇게 빨리 짓는 게 말이 됩니까? 부실 공사인가? 누가 공사비 횡령한 거 아닙니까?"
 "곧 무너지겠는데."
 
 그래서 이제 어떡하냐? 캘리 칼리의 나직한 물음에 소피아가 황당하다는 듯 정신 사납게 손짓했다. 차에 앉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다리까지 파닥거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건 캘칼 님이 생각하셔야죠!"
 "내가?"
 "이 인간아! 당신이 먼저 하자고 했잖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치열한 눈치 싸움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도 끝내 패배한 소피아가 한숨을 푹 쉬며 말을 뱉었다.
 
 "사무실이 있어야만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린가?"
 "저희 원래도 직접 건수 찾아다녔었잖습니까."
 "그–랬었지. 이번에도 그렇게 하자, 이 말인가?"
 
 영양가나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는 못할 대화를 나누며 길거리를 살피는 그들의 눈에 적절한 사냥감이 들어왔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의 누군가가 축 늘어진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 보니 대로변에 불법 주차한 꼴이 되어버린 그들의 화려한 차를 유기하고는 잠재적 고객–타깃–에게 접근했다.
 
 "어이 바이터, 무슨 고민 있나?"
 
 아휴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바이터가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괴이쩍은 표정을 지은 채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로 희한한 차림새의 남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캘리 칼리에게 역으로 물었다.
 
 "그으, 안 추우십니까? 많–이 추워 보이시는데…."
 
 이 날씨에 반팔 반바지라니! 꼭 적도 부근 여행지에 온 관광객 같은 옷차림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의 이해 못 할 패션을 바라보던 그는 할 말이 더 있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걱정스러운 입매를 만들어 보였다. 눈발이 점차 굵어지고 있는 것이 당장이라도 함박눈으로 변해 세상을 뽀얗게 뒤덮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 난 괜찮아."
 "역시 아주 그냥 상–남자시군요."
 "그래서 고민 없습니까, 고민?"
 "고민이야 늘! 있습니다만"
 
 그걸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얼떨떨한 물음에 캘리 칼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가 고민해결사거든.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없지."
 
 잠시 눈을 도록도록 굴리고, 입을 두어 번 달싹대던 바이터가 수상쩍은 두 남정네에게 제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눈앞의 이들이 어떠한 사업체의 고위직이 아닌 이상 해결해주지 못할 고민임을 알면서도.
 
 "또오 취직에 실패했습니다아."
 "저런."
 
 소피아의 안 하느니만 못한 어색한 지화자가 곧바로 뒤를 이었다. 그것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바이터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절 떨어뜨리는 일터가 없! 었으면 좋겠군요…."

 고민해결사들에게 그 말은 곧 일종의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는 것쯤은 간단하다는 듯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요? 보기보다 과감하시군요?"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구만. 자넬 떨어뜨린 곳이 어딘가?"
 "아무래도 이번엔 전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길모퉁이의 카페입니다만, 전력을 다한다니요!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바이터가 뭐라 더 말할 겨를도 없이 두 고민해결사가 카페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카페 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멍하게 바라보던 그는 곧이어 보인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펑. 카페가 터졌다. 말 그대로.
 
 입을 딱 벌린 채 카페–였던 것–를 응시하던 바이터가 굳은살 박인 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쾌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다가온 두 자칭 고민해결사가 그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자, 고민 해결이다."
 
 고민을 해결해 주긴커녕 더 장대한 사건을 안겨주고는 유유히 떠나간 고민해결사들을 보던 바이터가 나지막하게 절규했다.
 
 "칙쇼–…."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그 고민은 두 해결사에게 닿지 못했다.

 

 오늘도 한 사람의 고민거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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