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비극의 대단원

Avrora 2025. 3. 2. 18:05

BGM - Bad End


인간에게 금기시되는 탑의 꼭대기. 그 정상까지 처절하게 기어 오른 인간이 뇌까렸다.
 
 "누가 어디인진 당신들이 정하는 게 아냐."


 보기 좋았던 추억은 닳아 없어져 원망만이 남았다. 깨져버린 현재를 외면하고는 해진 기억만을 그러쥐며 살아갈 바엔 내 손으로 망가져가는 미래를 쏘아 그 잘난 궤도에서 추락시키고야 말겠노라고, 그는 더러운 뒷골목을 지나며 다짐했다.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이 영원토록 함께한다는 동화는 진작에 끝났으니까.
 
 이것은 부와 명예를 대가로 과거를 내버린 이에게 과거가 내리는 심판이었다. 후회하게 될 거라고, 몇 번이고 일러줬지만 외면한 건 그쪽이었으니까. 경고를 지키지 않은 자에겐 사고가 뒤따르는 법이다.
 
 한 층씩, 한 명씩, 차례대로 꺾어가며 비극의 꼬리와 몸을 엮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효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친애하는 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를 내고, 못이 사납게 박힌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 배신은 심장이 아리도록 쓰라렸다고, 동화가 산산조각 난 것은 순전히 네 잘못이었다고, 그렇게 외칠 것이라고 믿었다.
 
 "너…!"

 하지만 그 탐욕으로 붉게 물든 눈을 마주치니 정작 든 감정은.

 "오랜만임다."

 공허였다.

 배신은 그 무엇도 낳지 않는다. 과거를 매듭짓기 위한 일이니까. 애초에 새로운 시작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으니 돌아오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기에, 복수를 행한 이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복수를 하기도 전에 모든 의욕이 식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요새 아주 잘 나가심다?"
 
 과거를 내버리더니.
 
 "이야, 솔직히 꽤 놀랐슴다."
 
 그렇게 잔인하게 굴고선 얻은 게 고작.
 
 "저희 셋 중 가장 그런 타입이 아니셨잖슴까?"
 
 이딴 것이었나?
 
 "뎌는 그러니까–"
 "필요 없슴다."
 
 굳이 거짓말까지 하지는 마십쇼. 가라앉은 목소리에 감정을 싣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감정하게 자른 말에 담
긴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눈앞의 남자가 가쁜 숨으로 말을 주워섬겼다.
 
 "원하디는 게 뭐든디 말만 해듀디면…"
 
 그가 원하는 것. 모든 게 모자랄지라도 행복과 희망, 낭만이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다시 돌아가지 못할 이야기라고 이름 붙은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꾸역꾸역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
 그가 조소한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못 줌다."
 
 그 누구도. 작게 속삭인 그 말을 들었을까. 색채가 빠져나간 잿빛 피부에 달린 섬뜩하도록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이젠 알고 있다. 행복하기만 한 동화는 존재하지 않고, 한 번 수렁으로 빠진 바퀴는 안간힘을 써도 쉽사리 빠져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어려운 길로 가는 데 힘을 쓸 바엔 고통의 원흉을 없애는 것이 낫다.
모두가 만족할 순 없다. 한 명만이 만족하는 상황에서 이해를 촉구하는 것보단 허름한 추억을 품에 안고 다 같이 추락하는 것이 아름다운 맺음 아니겠는가.

 만화 속 기사를 꿈꾸던 아이도, 영웅을 선망하던 청춘도,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감독도 모두 사라졌다. 어린 시절 꿈을 향한 여정이 끝나버렸으니 남은 것은.
 

"배우의 애드리브가 극의 결말을 바꿔선 안 되잖슴까?"
 
그러니까, 이게 우리의 운명이고, 눈물이 나오도록 우스운 비극이라고.
 
"배우는, 극본대로, 연극의 끝을 봐야지!"
 
붕, 소리가 나도록 휘두른 몽둥이가 바닥을 내리치자 대리석에 커다란 금이 갔다. 마치 무언가의 은유 같아서, 그는 실소를 흘렸다. 꼭 모든 게 우리의 파멸을 바라는 것만 같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처절한 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대단원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뎌도 돌아가고 딮어요."
 
 검게 물든 얼굴의 삼백안이 매섭게 단안경 너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거친 바람을 일으키는 헬리콥터에 올라탄 그의 눈은 씁쓸해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건물의 꼭대기에서 호의호식하던 그가 끝내는 하늘 위에 올라선 채, 갈라서버린 오랜 친구에게 말했다.
 
 "뎌도, 그때로 돌아가고 딮다고요."
 
 하나. 같은 것을 바랐지만 그 방향이 너무나도 달라진 그들이었다.
 둘. 그는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워 들기 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살피고는 축 늘어진 몸을 뒤집었다. 줄곧 가리고 다니더니.
 셋. 딱 한 발이 남은 총의 방아쇠를 매만지며, 그가 웃었다.


 "잊으십쇼."
 
 철컥, 차가운 장전음과 함께 총구가 붉은 형체를 겨눴다.
 
 "아시잖슴까? 이젠 나아가야죠."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끝이니까. 그 비참한 속삭임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창백한 총성이 창공을 뒤흔들었다. 나풀나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종잇장을 잡기 위해 추락하는 옛 인연.
모든 숙원을 마쳤다. 두 손으로 직접 끝낸 비극의 뒤에 얼룩을 더 남길 수는 없으니 죽음을 원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진 몸은 자연스레 저항을 멈췄고, 금세 몸을 잠식한 질병이 제 숙주를 쓰러뜨렸다.
 
 우리는 함께했던 이야기를 흘리며 눈을 감았다. 이로써 죄업의 막이 내려간 셈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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