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Tell Me, Dear

Avrora 2025. 1. 18. 20:47

BGM - Dear Lie


0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3

 칙, 칙–. 몇 번의 헛손질 끝에야 성냥에 불이 붙었다.
 상담사의 손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성냥의 불씨가 촛불로 옮겨붙는 광경을 잊지 않겠다는 듯 응시하던 여자가 물었다.

 "아직 촛불을 쓰시네요?"

 하, 하. 상담사가 웃었다.

 "촛불만큼 부드러운 빛이 귀해서 말입니다. 상담을 할 때면 꼭 켜두지요."

 그녀가 내려다본 촛대는 떨어진 촛농 하나 없이 깨끗했다. 키가 큰 촛불이 뜨거운 불꽃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그가 따뜻한 찻잔을 그녀의 앞에 놓았다.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며 그는, 마치 그녀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음료의 절반만이 남을 때까지 저마다의 잔을 기울였다.

 달칵. 소리가 나도록 컵을 내려놓은 그는 그녀에게로 상체를 숙였다. 고작 착각에 불과하겠지만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종류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본능적인 불안감, 혹은 두려움 같기도 한.

 "말해보세요.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합니까?"
 

1

 "제겐 다 털어놓으셔도 됩니다."

 아시죠? 뭐든지. 상담사가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속삭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2

 그와 처음 마주친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과거였다.
 출판한 동화의 연이은 실패로 깊은 우울감에 빠진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칙칙한 원피스를 입고 음울한 거리를 걷던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고급진 청회색의 긴 코트를 입고 다가온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힘든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그녀의 경계 어린 시선이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린 그는 검은 명함을 내밀었다. 눈앞의 남자의 것이라기보단 어느 심리상담소에서 사용하는 명함의 형태를 띤 전단에 가까워 보였다.

 "이곳으로 찾아오시면 제가 있을 겁니다."

 그는 뻣뻣한 웃음을 어느새 상냥한 종류의 것으로 바꾸고는 모자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코트의 끝자락을 휘날리며 걷는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마자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그녀도 얇은 겉옷을 여미며 낡은 아파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걸어간 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에 비친 것은 흑백 사진처럼 색깔 없는 옷을 입고 영혼을 잃은 채 생기 없이 걸어가는 도시의 톱니바퀴들뿐이었다.
 

4

 틱, 톡. 틱, 톡. 그 방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 존재는 상담사뿐이었다.

 그를 만날 적이면 그녀는 신난 꼬마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술술 말하고는 했다. 그렇게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 나면 뭔가 그녀의 세상이 나아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확실히 더 나아졌다. 그가 그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만큼 그녀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더 자주 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와의 시간을. 얼마가 필요하든. 더 자주. 오래.

 "제 상담소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습니다."

 그녀는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상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에게 웃었다.

 "길을 잃은 것 같다면 이곳으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그녀의 모자람으로 인해 주변에 그 누구도 남지 않는다 한들 상관없었다. 그녀를 살필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아직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그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였다.

 동화를 쓴 지 얼마나 되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6

 "상담비가 올랐네요?"
 "당신에게 쏟는 시간이 늘고 있으니까요."

 그가 상체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했다.

 "저 말고 당신에게 시간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이 정도는 감수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게 묻는 상담사의 얼굴은 지독히도 서늘했다.

 "네, 맞아요. 그렇죠."

 의자 등받이에 기댄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담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꼭 현금으로 지불하실 필요는 없지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그가 잔을 들고 입가를 가렸다. 저 잔 너머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런 의문, 혹은 불안감이 떠올랐다.

 "당신이 가진 무언가 중 가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음날, 그녀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던 낡은 진주 목걸이를 들고 상담실로 향했다.
 

5

 한 걸음, 또 한 걸음. 긴 복도를 걸어가면 언제나 아름다운 문이 그녀를 반겼다.

 가장 예쁜 원피스를 차려입고 굽 높은 구두에서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그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통상 어떤 이야기를 할까, 라는 행복한 고민과 함께하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모두 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없는 상태로 지나가는 복도는 유달리 길게만 느껴졌다.

 꼭 알려줘야지. 중얼거리며 나무 문을 열자 언제나 그랬듯 익숙한 향이 그녀를 반겼다. 커피 원두와 찻잎, 여기저기 쌓인 책에서 나는 낡은 종이 특유의 쿰쿰한 냄새, 희미한 담배 향까지. 커피 그라인더를 돌리던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용하는 그 자리에 앉은 그녀의 앞에 언제나와 같은 찻잔이 놓였다. 막 우러나기 시작한 차와 에스프레소의 향이 넓지 않은 상담소를 가득 채웠다. 드리퍼에 물을 붓는 그의 손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커피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그 순간의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해주면 분명 놀랄 테니.

 그는 언제나 그랬듯 머그잔의 절반이 살짝 넘게 따른 커피를 들고 맞은편에 착석했다. 상담사가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질문이 마치 신호탄이라도 되는 양,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을 뱉었다.

 "우리 이야기를 담은 동화를 쓰고 있어요."
 "흠?"

 그의 눈이 빛났다.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에 더욱 흥분한 그녀가 온갖 말을 늘어놓았다. 누가 등장하는지,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인지. 모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듣던 상담사는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동화가 완성되면 제게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녀는 커다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7

 상담소의 재떨이는 언제나 깨끗했다.
 마치 예의상 놓았다는 듯 작은 재 가루조차 없는 투명한 크리스털 재떨이였다. 하지만 상담소에서는 늘 흐릿한 담배 냄새가 났지. 언젠가 그에게 이것에 대해 묻자 그는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무리한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상담사는 부드럽게 웃었다.

 "말하기보단 듣는 걸 즐기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따각. 따각. 그가 손톱으로 나무 책상을 두드렸다. 소지부터 검지까지. 다시, 소지부터 검지까지.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던 손가락이 일순 멈췄다.

 "동화의 일환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군요."

 그날의 상담 이후로 감히 그녀가 그에 대해 묻는 일은 없었다.
 

?

 "나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8

 없다.

 초라한 나무 문이 그녀의 삶을 막아섰다. 잠긴 문을 몇 번이고 두들겨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문 너머에서는 커피 그라인더가 느릿하게 돌아가는 소리도,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도, 고급진 가죽 구두가 나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기다려도 익숙한 발걸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버려졌다.
 

9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검은색 배경에 상담소의 이름과 주소만이 쓰인 명함. 그녀에게 희망을, 평안을, 그리고 두려움을 주었던 에 대한 정보는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름조차 몰랐어. 난 모든 걸 바쳤는데."

 왜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거죠?

 
 "나는 모든 걸…."
 
 마음속의 무언가가 그녀에게 속살댄다. 감히 그를 의심하는 거야? 그 사람이 내게 쏟아부은 시간이 얼마고, 나 때문에 낭비한 게 얼마나 많은데.

 돌아오겠지. 기다리면 올 거야.
 
 황폐한 정신으로 그녀는 다시금 상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러는 사이 그가 돌아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머그잔의 절반만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항상 똑같은 찻주전자를 끓이며.

여전히.


그녀는 낡은 나무 문에 기대어 앉았다. 돌아올 것이다. 길을 잃은 것 같다면 이곳으로 찾아오라고 허락을 받았었으
니. 완성된 동화를 보여주겠다고 약속도 했었으니.
 
 돌아와야만 하는데.
 
 늑대는 며칠, 몇 주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0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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